악마를 보았다 : MAN VS EVIL 영화 이야기

여기 두 남자가 있습니다.

한 남자는 양심도 죄책감도 없이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르는 연쇄 살인마이고, 다른 한 남자는 철저하게 통제되는 상황 하에서 이성적 판단에 따라 폭력을 행하는 복수자입니다.

이 두 남자는 극한적인 폭력을 남에게 휘두른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들이 영화 내내 남에게 행하는 폭력은 피해자의 인생을 망가뜨리기에 충분한 정도이죠. 다만 영화속에서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는 폭력을 행하는 범위에 있어 제약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고, 후자는 폭력을 죄인에게 단죄의 의미로만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설정 아닌가요? 

이건 전형적인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는 악당과 그 악당을 괴롭히는 히어로의 이야기입니다. 덕분에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떠오른 건 <추격자>도 아니고 <실종>도 아닌 영화 <다크 나이트>였습니다. 룰에 휘둘리지 않은 악당과 룰에 휘둘리는 히어로의 갈등인 점에서 두 영화는 비슷하거든요.

그래서 결과는 <다크 나이트>처럼 히어로의 패배일까요? 그건 영화를 보는 관객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요.

배우들의 연기는 괜찮습니다. 영화 초반부 희생자를 비롯한 몇몇 조연의 연기가 조금 걸리기는 합니다만, 주연으로만 한정시킨다면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맡은 바를 무리없이 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미지가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은 어느정도 있습니다. 우리는 최민식의 변태 악당으로서의 모습을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미 봤고, 감정이 극한으로 치솟는 상황에서 끝까지 이성적으로 대처하려 하는 이병헌의 모습은 <달콤한 인생>에서 이미 봤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영화는 중간중간에 긴장과 웃음이 넘치는 장면들을 포진해 두어 익숙한 이미지의 이 둘이 낡아 보이지 않게 해주지만, 두 배우 다 연기변신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조금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개봉전부터 화제가 된 잔혹성 부분에서는...사실 잔혹성을 사람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 가는 개인적인 문제이겠지요. 강도면에서나 범위 면에서나. 제 경우에는 최근 영화 중에서는 <파괴된 사나이>의 아이를 학대하는 장면이 <악마를 보았다>의 신체훼손장면보다 더욱 불쾌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영화 전체로 보자면 잔혹성 상상의 달인 절단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 쪽이 훨씬 심하다고 생각되고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아저씨>에서의 신체 훼손 장면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악마를 보았다>도 견딜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꽃미남이 사람을 쑤시는 거랑 아저씨가 사람을 자르는 것이 같냐! 라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앞서 말한대로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매 중요 포인트마다 긴장과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지는 액션에는 아쉬운 부분이 없잖아 있는데, <악마를 보았다>의 액션장면들은 화려하거나 멋있다기 보다는 재미있는 쪽입니다. 지난 두 편의 영화를 허세가 넘치지만 동시에 화려한 액션으로 채웠었던 김지운 감독에게는 조금 실망을 했다고나 할까요. 얼마 전에 본 <아저씨>의 액션이 보기 드물게 괜찮았던지라 더욱 아쉬웠습니다.

다행이라고 할지, 음악 쪽에서는 <악마를 보았다>가 <아저씨>보다 훨씬 낫습니다. 대부분의 음악이 상황에 잘 맞아 떨어지고, 쓸데없이 감성을 자극하려고 '울어라~울어라~'를 강조하는 부분도 없죠. 따로 OST를 구매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튄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영화 곳곳에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이미지'가 많이 나온다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박찬욱 등 다른 감독들 작품들의 패러디 내지는 오마쥬라고 하더군요. 한국 영화의 팬이라면 그런 부분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악마라고 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해 인간의 룰로 싸움을 거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혹자 말대로 정상인이 사이코패스를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영화일수도 있고, 그저 이도저도 아닌 철지난 복수극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부분에서는 <악마를 보았다>는 <아저씨>보다는 훨씬 나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찝찝한 표정으로 나갈 지언정,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중에는 웃고 떨고 하며 영화에 몰입하게 되거든요. 

어차피 원빈 때문에 <아저씨>는 여성분들과 볼 것이니, 남성분들끼리 모였을 때는 과감하게 <악마를 보았다>를 지르는 결단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S. - (1) 영화 중간에 군대 갔다온 사람이면 뒤집어질만한 유머가 있습니다. 

P.S. - (2) 제 옆에 앉은 커플 중 남자는 영화 속에서 누가 "X발"이라고만 하면 킬킬대며 웃더군요. 그게 웃기는 장면이든 아니든 말
              이예요. 이게 다 국산 조폭영화의 폐해입니다.

P.S. - (3) 개인적으로는 결국 둘 중에서 (이병헌)이 맡은 배역이 졌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복수라는게 다 그런 법이죠.


덧글

  • 2010/08/13 23:5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해파리 2010/08/14 09:32 #

    기본 글자색이 진한 검정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골랐는데 아니었군요.
    집에 가서 고쳐야겠어요...
    저도 예전에는 신체훼손장면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보면서 "저건 가짜다, 저건 가짜다."라고 생각하면서 보니까 좀 나아지더라구요.
  • 루드-♪ 2010/08/14 02:50 # 답글

    개인적으로도 ps3은 동감합니다. 저도 괜찮게 보고왔는데 대부분의 혹평일색이라 조금 아쉬운 감이 있네요.
    조금더 다듬어져서 나올 감독판을 기대해봐야겟네요.
  • 해파리 2010/08/14 09:34 #

    저도 감독판을 기대중입니다. 감독이 구상했었던 다른 엔딩들도 궁금하고 말이죠.
  • blue sk. 2010/08/15 19:49 # 삭제 답글

    와 글이 진짜 공감되네요 ㅋㅋ이번 영화를 보면서 이병헌이 영화 아저씨의 원빈 역을 맡을 순 있어도 원빈이 이병헌의 역할을 소화해낼 순 없을 거라고 느꼈어요. 요즘 다들 원빈,원빈 하는데 솔직히 연기는 돌체앤가바나를 외쳤던 조연이 훨씬 더 인상깊었는데...^^; 원빈 역에서 그렇게 격하고 힘든 감정씬은 없었으니까.. 꽃미남이 묵묵히 사람들을 죽여나가는 카리스마스 정도...? 성공적인 복수극의 카타르시스를 원빈이 보여준 반면, 이병헌의 복수극은 허무감, 찝찝함, 먹먹한 가슴을 보여준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가슴에 와닿고. 마지막 이병헌의 무너져내리는 듯한 울음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그 흐린 하늘까지도..
  • 해파리 2010/08/16 10:38 #

    확실히 <아저씨>에서는 그 조연분이 인상깊었죠.

    원빈도 언젠가는 "이건 원빈 아니면 나올수 없는 영화야!"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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